나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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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이름보다 외모가 먼저 말한다

한국에 도착한 첫날, 공항의 공기가 낯설었다. 추운 것도 더운 것도 아닌데, 뭔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긴장이 있었다.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누구도 내 얼굴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다행이었다. 이방인이라는 걸 들키지 않고 싶은 마음이, 이마에 땀처럼 고여 있었다.

처음으로 느꼈다. 사람이 ‘이름’보다 ‘외모’로 먼저 판단될 수 있다는 걸. 나는 말이 느리고, 표정이 어색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게 나였지만, 사실은 나도 내가 낯설었다.

모든 것은 일터에서 시작되었다

새벽 다섯 시. 한국에서의 하루는 항상 이른 아침으로 시작된다. 공장 라인에서 일하면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한국어는 잘 안 들리지만, 몸으로 배우는 데는 익숙하다. 기계 소리와 욕설, 웃음과 한숨이 뒤섞인 공간. 그게 나의 첫 번째 교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곳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얼마나 잘 참느냐’라는 걸. 말보다 손이 빠르고, 피곤함보다 고요함을 유지하는 사람이 좋은 일꾼이다.

고향이 그립지 않냐고 물을 때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고향이 그립지 않아요?” 사실 그립다는 말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매달 보내는 송금이, 내가 거기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다. 영상 통화로 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점점 늙어간다. 아버지는 말이 없다. 아들이 잘 지낸다는 말만 반복한다.

나는 그립다. 하지만 말을 아낀다. 그리움은 일에 방해가 되니까. 그건 지금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감정 같다.

처음 센터에 갔던 날

작은 종이를 들고 버스를 탔다. 그 종이에는 ‘강동 외국인 근로자센터’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동료가 알려준 곳이었다. “힘들면 저기로 가.” 처음엔 의심스러웠다. 도움이라는 게, 그냥 생기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그날, 나는 차를 얻어 마시고, 쉬운 말로 설명을 들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 그게 오랜만이었다.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데도, 괜찮다고 해주는 공간. 그게 ‘센터’였다.

말을 배우는 건 용기다

나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처음엔 부끄러웠다. 어른이 되어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건,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배움이 나를 구했다. 마트에서 물건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병원에서 증상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이름을 제대로 발음해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정확히 불러줄 때, 나는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것만으로도 배움은 가치 있었다.

나는 아직도 불완전한 상태다

여전히 한국말은 어색하고, 여전히 길을 헤매고, 여전히 내 얼굴에는 낯선 티가 난다. 하지만 나는 점점 이곳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주말에는 빨래를 널고, 컵라면보다는 김치찌개가 익숙해졌고, 누군가 힘들다고 말할 땐, 나도 모르게 어깨를 두드리게 된다.

나는 여기서 살아가는 중입니다

누군가는 묻는다. “언제까지 한국에 있을 거예요?”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건 아직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여기서 그냥 ‘버티는 중’이 아니라, ‘살아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사는 건 생각보다 조용하고, 느리며, 때로는 눈물겹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디게 해주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걸, 나는 이곳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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